축구 역사 속에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선수들이 J리그에서 마지막을 장식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들은 짧은 시간 동안이지만 일본 축구에 큰 영향을 미쳤고, 팬들에게 잊을 수 없는 기억을 남겼죠. 오늘 소개할 선수는 이탈리아 축구의 전설적인 공격수, 살바토레 스킬라치(Salvatore Schillaci)입니다.
월드컵을 빛낸 영웅, 스킬라치
살바토레 스킬라치는 1965년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프로 경력을 시작한 뒤, 유벤투스와 인터 밀란 같은 명문 구단에서 뛰며 눈부신 활약을 펼쳤습니다. 유벤투스에서는 코파 이탈리아(이탈리아 FA컵)와 UEFA 유로파리그(당시 UEFA컵) 우승을 경험했고, 인터 밀란에서도 또 한 번 유로파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유럽 무대에서도 실력을 입증했죠.
그러나 그의 이름을 전 세계에 알린 가장 큰 계기는 바로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이었습니다. 자국에서 열린 대회에서 스킬라치는 6골을 터뜨리며 대회 득점왕에 올랐고, 최우수 선수(골든볼)까지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이탈리아 대표팀(아주리)은 3위를 기록했지만, 그 과정에서 스킬라치는 단연 가장 빛나는 선수였습니다. 그가 팀을 구하는 듯한 경기력을 보였기에, 팬들은 그를 "토토(Toto, 救世主)"라는 애칭으로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J리그에서의 새로운 도전
이탈리아에서만 활약하던 스킬라치가 처음으로 해외 무대로 떠난 것은 1994년, 그가 선택한 팀은 일본의 주빌로 이와타(Jubilo Iwata)였습니다. 당시 J리그는 창설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유럽과 남미의 여러 스타플레이어들이 모이면서 점점 수준 높은 리그로 성장하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J리그에서도 스킬라치의 골 결정력은 빛을 발했습니다.
1994년, 리그 데뷔 시즌에서 18경기 9골을 기록하며 빠르게 적응했고, 1995년에는 34경기 31골이라는 어마어마한 기록을 세우며 득점 랭킹 2위에 올랐습니다. 1996년에도 23경기 15골을 터뜨리며 꾸준한 활약을 이어갔죠. 그야말로 주빌로 이와타의 핵심 공격수이자, J리그 최고의 외국인 선수 중 한 명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갑작스러운 이별, 그리고 영원한 기억
그러나 1997년,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습니다. 스킬라치는 오랫동안 앓아왔던 허리 부상이 악화되면서 결국 이탈리아로 돌아가야만 했습니다. 결국 그는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며, 현역에서 은퇴를 선언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작년(2023년) 9월, 스킬라치는 향년 5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너무나도 이른 나이에 전설적인 선수를 떠나보내야 했기에, 그의 죽음은 많은 축구 팬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깊은 인상을 남겼고, 그의 뛰어난 경기력과 인상적인 골들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습니다.
우리 기억 속에 영원히 남을 선수
스킬라치는 월드컵 스타였을 뿐만 아니라, J리그에서도 짧지만 강렬한 족적을 남긴 선수였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그가 보여줬던 폭발적인 골 감각과 냉철한 결정력이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리고 단순한 유명 선수로서가 아니라, 일본 축구 발전에 기여하고, 팬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한 점에서 더욱 의미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떠났지만, 그의 플레이는 여전히 유튜브 영상과 기록 속에서 살아 있습니다. "토토"라는 별명처럼, 그는 많은 축구 팬들에게 희망과 감동을 선물했던 선수로 기억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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